<나 무>
둘릴 듯이, 들리지 않는
저렇게 조초로운 자세 속의 선율이
나직하게 바람을 일어 승화한다.
화염처럼 치솟는 수심(樹心)은 뿌리 깊이 뻗어
만엽(萬葉)에 스미는 스스로의 화려한 체념!
나무들은 그 언제나
저마다의 고독을 대하면서
말없이 자신ㅇ르 믿으며 살고 있다
나무여, 나의 노래에
너와 같은 인내와 믿음과 기도를 주라
바람의 애무에 적시우면서
하늘 지향하는 새들의 휴식을
노을빛 속에 초대하여 저무는
이 우람한 협주(協奏)의 여울!
소나무, 잣나무,느티나무라 외롭게
부르지 말라 분별지 지나지 않는 이름을!
그들은 이곳에 정주하는
차별 없는 동포들이다.
무수한 빛발이 지나는
밀어(密語)의 강을 이루우며 그들은
서로 동경으로 접촉하고 있다
나무에 대한 나의 죽음에의 향수!
저 꿈속같은 공간에서,나의 노래는
세월의 고적한 여운에 지나지 않는다
풍매(風媒)의 기쁨으로 해마다 두거지는
나무들의 아늑하고 줄기찬 영워(營爲),
그들은 이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존재'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랑하는 시보다 아름다운
그들의 그윽한 오후의 대화들이
오늘, 여름을 불러 가지마다 더욱 푸르다
우리들이 제멋대로 이름한 나무와 나무,
하늘은 침묵처럼 슬기로운 그의 계시(啓示)!
나무는 정녕 신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자유문학(1957) 수록
나무에 바람이 부는 정경에서 시작하여, 체념과 고독을 딛고서, 인내-믿음-기도의 자세로 자라는 상태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인간 존재의 그원적인 높이를 나무에 비유하여 신적인 세계에까지 고양시키려는 형이상학적인 서정시이다.
시집<전원 교향곡(1972)> 수록
<설야(雪夜)의 장(章)>
새하얀 장미의 탄식과도 같이
눈 내리는, '마리아'의 밤!
옛날의 그이를 사모쳐
새하얀 공간에 가득히
그려 놓은 새하얀 그림들이
일시에 무너지듯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가(涯)없는 추억을 묻히고
밤을 묻히고, '청춘'이 작별한
나의 마음은 묻힌다.
밤이 새도록 쉴 새 없이
머언 그이의 사라진 발자욱처럼
꽃과 나비와 낙엽들의
쓰러져 하염없는 사연처럼
눈은 내 고독의 숲을 내려 쌓인다
......아--이러한 밤에
'예수'는 태어났는가!
바람들이 남기고 간
이 새하얀 영원의 여백.
하늘과 땅이 융합하는
그 설백한 사랑의 노래는,
그지없는, '운명'을 우는
나의 혼을 가란치우며
세계를 덮는다.
......눈 내리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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