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묘지송..........박 두진

바보처럼1 2006. 9. 13. 23:22

<묘 지 송(墓地頌)>

 

북망(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죽음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삐이 배 뱃종뱃종 !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문장 5호 (1939.6) 수록

향현과 함께 추천된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한 작자의 말

--" 무덤 속의 촉루들을 나는 깨끗하고 친근하도 동정공감에 찬 감정으로 그려보고 친화했고, 그리고 그것을 미화된 아주 승화된 시의 색깔과 향기와 노래로 투시하고 감각하고 관조해 보았다."

*주제는 주검의 세계에 대한 찬미.

 

 

<향 현(香峴)>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멋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여우, 사슴,산토끼,오소리, 도마뱀,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累巨) 만년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직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문장5호 (1939.6) 

"산"은 악과 선이 공존하는 인간 세계로 비유되고 있다. "화염"은 변혁을 뜻한다. 광복과 범인류 사상을 노래한 작품.

*주제는 평화로운 이상향의 동경.

 

 

<낙 엽 송(落葉松)>

 

가지마다 파아란 하늘을

받들었다.

파릇한 새순이 꽃보다 고옵다.

 

청송(청송)이라도 가을 되면

홀홀 낙엽진다 하느니

봄마다 새로 젊는

자랑이 사랑옵다.

 

낮에는 햇볕 입고

밤에 별이 소올솔 내리는

이슬 마시고

 

파릇한 새순이

여름으로 자란다.

 

*문장 8호 (1939.9) 수록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과 친화하면서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주제는 생명의 경이와 그 의지

 

 

<도 봉(道峰)>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도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시집 청록집(1946)수록

일제 말기의 암담한 현실과 구원을 바라는 외로운 심경을 노래했다.

전반부는 서경, 후반부는 서정

 

*자 자신의 말

_ "여기에 붙인 '그대'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민족이거나, 여호와거나, 그 모두이거나, 어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는것에도 나는 절절할 수가 있었던 때요, 그만큼 내 시에는 가장 포풀러하고, 서정성이 많고, 감미롭기까지 한 서러움을 지니고 있는 시다."

 

 

<설 악 부(雪岳賦)>

 

1

부여안은 치맛자락, 하얀 눈바람이 흩날린다. 골이고 봉우리고 모두 눈에 하얗게 뒤덮였다. 사뭇 무릎까지 빠진다. 나는 예가 어디 저 북극이나 남극 그런 데로만 생각하며 걷는다.

파랗게 하늘이 얼었다. 하늘에 나는 후우 입김을 뿜어 본다. 스러지며 올라간다. 고요오하다. 너무 고요하여 외롭게 나는 태고(太古) ! 태고에 놓여 있다.

 

2

왜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산만 찾아 나서는 걸까? 내 영원한 어머니...... 내가 죽으면 백골이 이런 양지 짝에 묻힌다. 외롭게 묻어라. 꽃이 피는 때, 내 푸른 무덤엔, 한 포기 하늘빛 도라지꽃이 피고, 거기 하나 하얀 산나비가 날라라. 한마리 멧새도 와 울어라. 달밤엔 두견도 와 울어라.

언제 새로 다른 태양, 또 다른 태양이 솟는 날 아침에 내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것도 믿어 본다.

 

3

나는 눈을 감아 본다. 순간 번뜩 여원이 어린다..... 인간들! 지금 이 땅 위에서 서로 아우성치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래도 멸하지 않고 오래오래 세대를 이어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우리 족속도 이어 자꾸 나며 죽으며, 멸하지 않고 오래오래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언제 이런 설악까지 왼통 꽃동산이 되어, 우리가 모두 서로 노래치며 날뛰며, 진정 하루 화창하게 살아볼 날이 그립다. 그립다.

 

 

*일제 암흑기의 작품

주제는 미래를 향한 신앙과 희망

 

 

<청 산 도(靑山道)>

 

산아, 우뚝 솟은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 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일제 암흑기에 지은 작품

1~2연의 소재는 자연, 3~4연의 소재는 임. 그 임은 조국이다.

 

 

<갈 대>

 

갈대가 날리는 노래다.

별과 별에 가 닿아라.

지혜는 가라앉아 뿌리 밑에 침묵하고

언어는 이슬 방울,

사상은 계절풍,

믿음은 業苦,

사랑은 피 흘림,

영원---너에의

손짖은

하얀 꽃 갈대꽃.

잎에는 피가 묻어

스스로 갈긴 칼에

선형이 뛰어 흘러

갈대가 부르짖는 갈대의 절규다.

해와 달 해와 달 뜬 하늘에 가 닿아라.

바람이 잠자는,

스스로 침묵하면

갈대는

고독.

 

 

<산맥을 간다>

 

얼룽진 산맥들은 짐승들의 등빠디

피를 뿜듯 치달리어 산등성을 가자.

 

흐트러진 머리칼은 바람으로 다스리자.

푸른 빛 이빨도는 이침 해를 물자.

 

포효는 절규. 포효로는 불을 뿜어,

죽어 잠든 골짝마다 불을 지르자.

 

가슴을 살이 와서 꽂힐지라도

독을 바른 살이 와서 꽂힐지라도

 

가슴에는 자라나는 애기해가 하나

나긋나긋 새로 크는 애기해가 한 덩이.

 

미친 듯 밀려 오는 먼 바다의

울부짖는 파도들에 귀를 씻으며,

 

떨어지는 해를 한 번은 울자.

다시 솟을 해를 위해 한 번은 울자.

 

 

<숲>

 

푸른 넝쿨들은

늙은 정정한 나무를 감으며

더 높은 하늘을 만져 보기 위하여

위으로 위으로 손을 뻗쳐 기어 오르고

 

골짜구니 샘물은 넘쳐 흘러

언젠가 꿈구던

먼 망망한 바다의 아침의 해후를 위하여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지줄되며 내려간다.

 

나래 고운 새들은

오늘의 사랑과

어쩌지 못할 슬픔과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가지에서 잔 가지로 날으며 울고

 

습습한 그늘

나무와 그늘과 나무그늘 푸섶에선

달팽이는 이제야 뿔을 쭝겨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늦으막한 여행길에 오르고

 

배암은 그늘에 숨어 사래쳐 도사리고

누군가를 저주하고 혀를 갈라 날름대고

달변을 연습하고 독의 꽃을 마련한다.

 

양지쪽 다람쥐는

그 저지른 스스로이ㅡ 잘못을

꾸며서 가리우기 위하여 알랑달랑 바쁘고

 

풀버러지는, 풀버러지는

낮에도 밤에도 다만

가늘고 선량한 노래의 선율을 울릴 뿐이다.

 

숲은,

밤에 찬란히 이는 머리 위 하늘의

별들이 내려 주는 촉촉한 이슬에

지혜가 늘고

 

갑자기 때로 불어 치는

바람와 비바람가 폭풍과 번갯불의 시련에

의지가 굳는다.

 

숲은

모든 것을 퐁용하고 쓰다듬어 애무하며

숲은 늘 위로 들어 소망하고

고개 숙여 명상한다. 무릎 꿇어 기도한다.

 

언제나 먼

푸른 바다으 소리에 귀 기울이고

총총하고 장엄한

별이 박힌 하늘에로 푸른 꿈을 준다.

 

*청록지(1946)수록

자영계의 숲을 통해서 인간 세계의 생태를 노래하고 있다.

주제는 숲이 지닌 포용력과 생명력 및 그 소망

 

 

<바 다 B>

 

바다가 와락

달려든다.

내가 않은 모래 위에.....

 

가슴으로

벅찬 가슴으로 되어

달려오는

푸른 바다!

 

바다는

내게로 오는 바다는

와락와락 거센 물결

날 데리러 어디서 오나!

 

귀가 열려

머언 바다에서 오는 소리에

자꾸만 내 귀가 열려

 

나는

일어선다.

일어서며

푸른 물 위로 걸어 가고 싶다.

쩔벙쩔벙

머언 바다 위로 걸어 가고 싶다.

 

햇볕 함빡 받고

푸른 물 위로 밟으며 오는

당신의 바닷길......

 

바닷길을 나는

푸른 바다를 밟으며 나도

먼 당신의 오는 길로 걸어 가고 싶다.

 

 

<변 증 법>

 

날개였었지

날개였었지

높디 높은 하늘 벽을 위로 부딪쳐

그 울음 혈맥 고운

하얀 새의 넋

새보다 더 먼저는

꽃잎이었었지

소리 아직 처음 일어 발음 없었던

그 침묵 오래 다져

황홀 속에 포개던

꽃잎보다 더 먼저는 햇살이었었지

그랬었지

햇살들이 비로소 꽃잎 형상져

꽃잎마다 새가 되어

하늘 날으던

하늘 날으던

하나씩의 그림자는 하나씩의 육신

육신이 땅에 태어 사슬 얽매인

벼랑에 그 바위 위에

사슬 얽매인

프로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

너 人身 그 먼저는

날개였었지

날개였었지

 

*사상계(1968)에 수록

 

 

<꽃>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라의

호심(湖心)아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고귀함 및 사랑의 아름다움을 메타퍼로 노래했다.

1연: 꽃을 통하여 본 자연의 신비

2~3연: 영원한 시간의 교차 위에 단 한 번 피어난 생명의 고귀함

4~5연: 사랑으로 비유되는 꽃의 아름다움

*주제는 자연과 생명과 사랑에의 귀의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사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랄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라도 너를 마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상아탑 6호(1945.5) 수록

새 인간성 및 이상ㅇ적 우주 구현을 노래했다.

*주제는 순수와 광명과 평화에의 의욕

 

 

<해의 품으로>

 

해를 보아라. 이글대며 솟아오는 해를 보아라. 새로 해가 산 너머 솟아오르면,싱싱한 향기로운 풀밭을 가자. 눈부신 아침 길을 해에게로 가자.

 

어둠은 가거라. 울음 우는 짐승 같은 어둠은 가거라. 짐승같이 떼로 몰려 벼랑으로 가러라. 햇볕살 등에 지고 벼랑으로 가거라.

 

보라, 쏘는 듯 향기로이 피는 저 산꽃들을. 춤추듯 너훌대는 푸른 저 나뭇잎을 영롱히 구슬 빚듯 우짖는 새소리들. 줄줄줄 내려 닫는 골 푸른 물소리를...... 아, 온 산 모두 다 새로 일어나 일제히 수런수런 빛을 받는 소리들.....

 

푸른 잎 풀잎에선 풀이 치는 풀잎소리, 너훌대는 나무에선 잎이 치는 잎의 소리, 맑은 물 시내 속엔 은어 새끼 떼소리..... .  던져 있는 돌에선 돌이 치는 물소리.

 

자벌에는 가지에서, 돌진아빈 밑둥에서, 여어어잇! 볕 함빡 받아 입고 질러 보는 만세소리..... 온 산 푸른 것, 온 산 생명들의 은은히 또 아 일제히 울려 오는 압도하는 노랫소리.....

 

산이여! 너훌대는 나뭇잎 푸른 산이여! 햇볕살 새로 퍼져 뛰는 아침은, 너희 새로 치는 소리들에 귀가 열린다. 너희 새로 받는 햇살들에 눈이 밝는다-- 피가 새로 돈다. 울음을 올라갈 듯 온 몸이 울린다. 새처럼 가볍도다...... 나는 푸른 아침 길을 가면서..... .  새로 솟는 해의 품, 해를 향해 가면서..... .

 

 

<당신의 사랑 앞에>

 

멀씀이 뜨거이 동공에 불꽃 틔는

당신을 마주해 앉으리까 라보니여.

발톱과 손가락과 심장에 상채기 진

피 흐른 골짜기의 조용한 오열

스스로 아룰리리까 이 상처를 라보니여.

조롱의 짐승 소리도 이제는 노래

절벽에 거꾸러짐도 이제는 율동

당신의 불곷만을 목구멍에 삼킨다면

당신의 채찍만을 등빠대에 받는다면

피눈물이 화려한 고기 비늘이 아니리까 라보니여.

발광이 황홀한 안식이 아니리까 라보니여.

 

*신앙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시

*라보니: 우리 주(예수)

*등빠대: 홑옷 안쪽에 등까지 대는 헝겊

 

 

<하 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시집 <해>(1949)수록

자연(하늘)과 시인이 하나로 합일되어 아름다움에 젖어 이루어진 시

이 시에서 ' 하늘'은 단순한 자연의 경지를 벗어나, 영혼과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주제는 자연과의 합일

 

<돌의 노래>

 

돌 이어라. 나는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 꼬대기에

앉아

종일을 잠잠하는

돌 이어라.

 

밀어 올려다 밀어 올려다

나만 혼자 이 꼭지에 앉아 있게 하고

언제였을까.

바다는

저리 멀리 저리 멀리

달아나 버려

 

손 흔들어 손 흔들어

불러도 다시 안 올 푸른 물이기

다만 나는

귀 쭝겨 파도 소릴

아쉬워할 뿐.

눈으로만 먼 파돌

어루만진다.

 

오 돌.

어느 때나 푸른 새로

날아 오르랴.

먼 위로 아득히 짙은 푸르름

온 몸에 속속들이

하늘이 와 스미면

어느 때나 다시 뿜는 입김을 받아

푸른 새로 파닥거려

날아 오르랴.

 

밤이면 달과 별

낮이면 햇볕

바람 비 부딪치고, 흰 눈

펄펄 내려

철 따라 이는 것에 피가 감기고,

스며드는 빛깔들

아롱지는 빛깔들에

혼이 곱는다.

 

어느 땐들 맑은 날만

있었으랴만, 오

여기 절정.

바다가 바라뵈는 꼭대기에 앉아,

하늘 먹고 햇볕 먹고

먼 그 언제

푸른 새로 날고 지고

기다려 산다.

 

<유 전 도(流轉圖)>

 

바람과 구름이 구름과 강물이

강물과 바다가 꼬리 물고 있다.

바다가 해살을 달빛이 번개를 노을이 강바람을 꼬리 물고 있다.

언덕과 산악, 사막과 도시, 궁전과 움막들이

있는 것은 무너지고

무너진 것들은 흘럭가고 있다.

아우성과 침묵이 영화와 몰락이

횡포한 자와 비겁한 자,

짓밟는 자와 짓밟힌 자,

빼앗는 자와 빼앗긴 자,

말하고 싶은 자와 말자지 못하게 하는 자,

아부하는 자와 바로 말하는 자

파계자와 성도자가

천 년씩 천 번을, 만 년씩 만 번도 더

무너지며 일어서며 영겁 속에 사그라져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흐르고 있다.

노여움도 자랑도 오만도 겸손도

사랑도 미움도

아름다움과 추

지혜와 어리석음

쫓던 자와 쫓기던 자

죽이던 자와 죽던 자

총칼도 보습도

비밀 암호도 경시도

짐스의 뼈도 사람의 뼈도 한데 묻혀 있다.

난 것은 모두 죽고 죽은 것에서 다시 나

소용돌이 소용돌이

저절로의 흐름

침묵에서 침묵으로의 영원한 있음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거기 있고 없는

해와 달,하늘 땅이 꼬리 이어 도는

천의, 엉ㄱ의 영겁 천지 바람 불고 있다.

 

*(현대문학) 제225호 (1973.9)수록

연작시 <수석열전> 제 68번이다

`6행: 천지 자연이 영원한 유전.

7~16행: 모순과 상충의 영원한 유전

17~25행: 희로애락과 약육강식의 허무한 유전

26~33행: 영원한 유전.

*주제는 궁극적인 삶의 진실.

 

*박 두진의 시집과 그 시세계

제 1기: 이상향에 대한 승화와 신 자연 세계의 주구시대

-- 청록파 공통인 자연을 노래한 그는 산과 하늘-해에서 바다로 퍼져 나갔다.(시집,청록집(1946),해(1949) 오도(午禱)(1953), 박 두진 시선(1956))

제 2기: 민족 의식과 역사 의식에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노래한 시대

--6.25동란의 비극을 고발하는 현실 참여적인 성격의 시를 썼다. (시집, 거미와 성좌(1962), 인간 밀림(1963), 하얀 날개(1967))

제 3기: 기독교적 정신에 바탕을 둔 근원적 인생의 탐구 시대

-- 장시와 연작시를 통해 자연의 섭리에 대해 끝없이 탐색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시집: 高山식물(1973), 사도 행전(1973), 水石列傳(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