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접(蝴蝶)>
가을 바람이 부니까
호접이 날지 않는다.
가을 바람이 해조(海潮)같이 불어와서
울 안에 코스모스가 구름처럼 쌓였어도
호접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는다.
적막만이 가을 해 엷은 볕 아래 졸고
그 날이 저물면 벌레 우는 긴긴 밤을
들피 끄스리는 등잔을 지키고 새우는 것이다.
달이 유난하게 밝은 밤
지붕 위에 박이 또 다른 하나의 달처럼
화안히 떠오르는 밤
담 너머로 박 너머로
지는 잎이 구울러 오면
호접같이 단장한 어느 여인이 찾아올 듯 싶은데.....
싸늘한 가을 바람만이 불어와서
나의 가슴을 싸늘하게 하고
입김도 서리같이 식어 간다.
*가을날의 적막감 속에서 나비를 찾는 시인은 지금 홀로 감미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을의 나비의 영상을 통해 인생의 허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나의 애가>
어제는 너의 초록빛 울음으로 하여
산딸기가 빨갛게 절로 익었는데
오늘은 하얀 달이 파랗게 질려
하현(下弦)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이제 머지 않아 우리들 운명이 쇠잔하여
죄없는 자랑이던 그 투명한 두 날개가
탈락하고 말 것이다.
욕설과
변명과
부조리의 잡초 속에서
아, 무엇을 더 바라리요.
바라리요?
다마 종말의 날에
정결한 찬 이슬이라도 흠뻑 마셨으면......
*박 화목의 시세계는 초기에 회화적인 콘덴스의 목가 풍과, 6.25동란 중의 내적 독백의 열렬한 기도의 자세와, 동란이후의 주지적인 수법을 통한 과념의 성숙으로 옮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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