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하늘은 금가지 않았다...........이 인석/ 봄 비.........이 형기

바보처럼1 2006. 11. 21. 16:42

<하늘은 금가지 않았다>

 

네 몸을 더듬어 보아라

더듬어 생각하라

뼈와 살이 헤졌던 자리를

아팠던 자리

몹시도 한스럽던 자리를

 

상처를 세어 보라

성한 곳이 있나 매만져 보라

<제국주의>의 흔적을

<동족상잔>의 흔적을

<애국>과 <반공>의 소인(燒印)이 찍혔던

민주주의 상처를

 

우리 몸이 부지해 숨살아 있다는 건

도시 믿을 수 없는 기적이구나

세월이 흐른 자리에

어쩌면 이렇게

멍든 자국뿐이냐

 

하늘 가까이 드높이 손들어

싱싱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를

흐드러지게 피어 웃는 꽃잎을 보라

이웃집 뜨락에는---유럽과 미대륙에는

꿈마저 아름차게 자란다누나

 

피 고인 자구엔 무엇을 심을까

곪았던 자리엔 무엇이 자라나

스산한 바람이 불어 에는

황량한 길가에

아이들이 햇빛을 안고 노래한다.

 

*근대사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 의식을 노래하고 있는 앙가지망의 작품.

제목의 " 하늘"은 理想.

주제는 고난어린 우리 민족의 길

 

 

<봄 비>

 

밤,

봄비는 창에 스민다

기다림에 지친 마음이 젖는다.

 

봄,

밤에 내리는 비

반 옥터브 낮은 목소리

 

물기가 배인 육신의 무게를

가눌 길 없구나.

봄밤에 비 온다.

 

먼 사람아 당신의 손길은

봄비와 같이 성가시다.

잠 재워 다오.

 

 

<소 묘(素描)>

 

괴로운 이여

내게로 오라

 

일체가 허무로 돌아간

여기, 자비와 평화는

너희의 것이리.

 

피를 부르는

이 땅(大地) 위에

엎디어 밝히는

 

마음이사

지극한 울림

 

온 우주에

퍼지리.

 

 

<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鎭座)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가리우고

다만 윤곽만ㅇ르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뜨고 방심 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로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버린 채

어쩌면 눈물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강가에서>

 

물을 따라

자꾸 흐를라치면

 

네가 산느 바다 밑에

이르리라고

 

풀잎 따서

작은 그리움 하나

 

편지하듯 이렇게

띄어 본다.

 

 

<코스모스>

 

자꾸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 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 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 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둠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호올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 가에

나의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라

 

*코스모스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관념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은 " 송두리째 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인 코스모스의 모습에서 자기의 존재 위치를 새삼 파악하고 있다.

 

 

<낙 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하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을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셈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나 무>

 

너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한 슬픈ㄴ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이 형기 문학 세계는 3기로 나누어진다.

제 1기: 1950년대에 생활의 애환이 깃든 서정시를 쓰던 시기

제 2기: 시보다는 평론에 힘쓰던 1960년대.

제 3기: 새로운 " 충격으 미학" 또는 "파괴의 미학"을 구축한 197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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