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샘터.......... 조 병화

바보처럼1 2006. 11. 21. 18:58

<샘 터>

 

빨간 태양을 가슴에 안고

사나이들의 잠이 길어진 아침에

샘터로 나오는 여인네들은 젖이 불었다.

 

새파란 해협이

항시 귀에 젖는데

마을 여인네들은 물이 그리워

이른 아침이 되면

밤새 불은 유방에 빨간 태양을 안고

잎새들이 목욕한

물터로 나온다.

 

샘은 사랑하던 시절의 어머니의 고향

일그러진 항아리를 들고

마을 아가씨들의 허틀어진 머리카락을 따르면

나의 가슴에도 빨간 해가 솟는다.

 

물터에는 말이 없다.

물터에 모인 여인들의 피부엔

맑은 비늘이 돋힌다.

 

나도 어머니의 고향이 그리워

희어서 외로운 손을

샘 속에 담구어 본다.

 

해협에 빨간 태양이 뜨면

잠이 길어진 사나이들을 두고

마을 여인네들은 샘터로 나온다.

 

밤새 불은 유방에 빨간 해가 물든다.

 

*제 3시집 '패각의 진실'(1952) 수록

아침에 샘터로 물 길러 나오는 여인네들, 그 한국적인 여성들을 통해서 밝고 건강한 생활을 의식하고 있다. 또한 그 여인들을 통해ㅐ서 옛날의 어질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주제는 신선한 생활감과 생명감.

 

 

<바다의 답서>

 

북극 해안

함박눈 내리는 병실 창살 사이로

말없는 오후의 바다가

헤아릴 수 없는 기다림에 눌려

 

"아 그렇습니다"

 

길고 긴 저 방파제 끝머리에

그대의 검은 눈동자 그대로의

등대가 반짝거립니다.

 

 

<소 리>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도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리

저만이 외롭답니다.

 

*시집 ' 버리고 싶은 유산'(1949)수록

소라를 통하여 작자 자신의 외로움을 비쳐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는 추억과 더불어 미래를 향한 동경이 있다.

 

 

<추 억>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던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의 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읍니다.

 

 

<하루만의 위안>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

 

눈을 감을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제 2시집 '하루만의 위안'(1950)의 표제가 된 시

인생은 세월처럼 흘러만 가는 것,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이 무엇인지 노래하고 있다.헤어짐과만남의 연속된 반복, 그 속에서 시인은 스스로의 위안과 보람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오산(烏山)인터체인지>

-----고향에로 가는 길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마아크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조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 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작자의 말----

나의 시는 작별과 상봉, 그 무상을 주로 일삼아 왔다.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군 안성면 난실리는 경부선 혹은 경부고속도로 오산 인터체인지에서 동으로40리 떨어져 있는 산간 마을이다

이 작품은 그 곳까지의 고속시대에 있어서의 작별 풍경이며 죽음으로의 하직 철학이다. 인간은 누구나 두 개의 고향을 지니고 있는 법. 하나는 자연의 고향, 또 하나는 영혼의 고향.

 

 

<목 련 화>

 

철학개론이랑 말라

면사포를 벗어 버린 목련이란다

 

지나간 남풍이 서러워

익쟎은 추억간이 피었어라

 

베아트리체보다 고던 날의 을남이는

흰 블라우스만 입으면 목련화이었어라.

 

황홀한 화관(花冠)에

4월은 오잖은 기다림만 주어 놓고

아름다운 것은 지네 지네

호올로

 

*처녀 시집 ' 버리고 싶은 유산'(1949)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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