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개구리...............한 하운

바보처럼1 2006. 11. 22. 22:52

<개 구 리>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즉흥시 같으면서도 자연과의 교감이 깊이 이루어져 있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가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 ㄹ 닐니리.

 

*보리 피리는 낭만적인 감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위한 절규이다.

*인환의 거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

*주제는 방란의 애상과 인생 무상.

 

 

<여 인>

 

눈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습 걸음걸이 하며

몸맵시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얿은 입술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

어쩌면 아슬아슬 눈 감길 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나>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 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억겁을 두고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벌이올시다. 벌이올시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보통 문둥이를 가리켜 천형(天刑)의 수인(囚人)이라 한다.누구의 잘못일 수도 없는 이 병의 소재는 하늘에다 그 답변을 물어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한 하운은 ' 나'에서 절규하다시피 노래하며, "나는 무엇보다 인간이 되기를 바라며, 그 투쟁은 인간에 대한 투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릿길 전라도 길.

 

*이른바 " 문둥이 시인" 으로 불리던 한 하운이 처음으로 시를 쓰고, 그것이 발표된 것은 1949년 3월 '신천지'에서이다. 그의 시가 어떤 것인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초기작으로 알려진 '전라도길'과 같은 시이다.

 

 

<청지 유정(靑芝有情)>

 

내가 울고 싶어서

파랑 잔디를 찾아갑니다.

 

남 몰래 한이 가도록 울고 싶어서

파랑 잔디를 찾아갑니다.

 

인간 폐업

천형 원한(天刑怨恨)을 울었읍니다.

 

몇백 번 죽음을 고쳐 죽어도

자욱 자욱 피 맺힌

그리움과 뉘우침이 가득찬

문둥이 아니겠읍니까.

 

실컷 울어봐도 유한(有恨)이 가시지 않아

그래도 울음이 울음을 , 눈물이 눈물을

달래 주는 자위(自慰)가 그립습니다.

 

눈 감고 눈 감고 누워서 조는

미령(靡寧)의 피로한 몸에

 

폭신한 파랑 잔디는

생명의 태반인 양

 

지령(地靈)의 혈맥이 이다지도

내 혈관에 싱싱한 채 순환합니다.

 

 

<나혼 유한(癩婚有恨)>

 

흙이 있다. 하늘의 구름과 푸른 지평은

넓기만 한데

문둥이가 살 지적도(地籍圖)는 없어

 

버림 받은 사내와 버림 받은 계집이

헌 신짝에 짝을 맞추는 것이

 

어쩌면 울고 싶은 울고 싶은

하늘이 마련한 뼈 아픈 경사냐

 

신부는

오늘만이라도 성냥개비로 눈썹을 그리고

인조 면사포에 웨딩 마아치는 들리지 않으나

 

오색 색지가, 색지가 눈같이 퍼붓는데

곱게 곱게 다가서라

 

진정 그와 그만의 짐승들만이

통할 수 있는 인정이 사무쳐

 

양호박 울둑불둑 얼굴이 이쁘장해

연지 바른 신부, 너 모나리자여

 

서식의 허가 없는 지대에서

생명의 본연의 터지는 사랑을 허락하니

 

하늘이 웃어도 할 수는 없어

애당초 족보가 슬퍼함을 두렵지도 않고

 

오늘은 이 세상에 왔다가

내일은 저 세상에 간다고 하니

 

오, 문둥이의 결혼이여

 

분홍빛 치마폭으로 신랑 방문을 가려라

어서 어서 태양 앞에 새롭게 다가서라.

 

 

<관세음보살상>

 

푸른 관세음보살상

적조(寂照) 속 자비의 열반

 

서라벌 천 년을 미소하시는

인욕(忍辱) 유화(柔和)의 상호(相好)

말쑥한 어깨

연꽃 봉오리의 젖가슴

몸은 보드라운 균제의 선에

신운(神韻)이 스며서

 

유백색(乳白色) 가사(袈裟)는

몸을 휘어 감아 나냘프게

곡선이 눈부신 살결을 보일락

자락마다 정토의 펼화가 일어

영락(瓔珞)이 사르르

저 세상의 음류 가릉 빈가(迦陵頻伽) 소리

 

청초한 눈동자는 천공의 저쪽까지

사생의 슬픔을 눈짓하시고

대초월의 자비로,

신래(神來)의 비원으로,

요계 혼탁(요季混濁)한 탁세(濁世)에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시고

정토 왕생시키려는 후광으로

휘황(輝煌)하시다

 

돌이

무심한 돌부처가

그처럼

피가 돌아 생명을 훈길 수야 있을까

 

갈수록 다정만 하여

아 문둥이 우는 밤

 

번뇌를 잃고

돌부처 관세음보살상

대초월의 열반에

그리운 정 나도 몰라

 

생생 세세(生生世世)

귀의하고 살고 싶어라.

 

 

<봄>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地域)에도 한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히늘이 부끄러워,

민들레 이른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밝안 모가지

땅속에서도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季節)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靑春)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번밖에 없는 자살(自殺)을 아끼는 것이요.

 

*이 세상에 펼치지 못한 푸른 꿈을 죽어서라도 그 푸른 노래와 꿈을 펼칠 수 있게 파랑새가 되겠다는 그 애 끓는 절규를 율조화하고 있다.
*<한 하운 시초>(1949)에 수록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