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보내 놓고..............황 금찬

바보처럼1 2006. 11. 23. 22:17

<보내 놓고>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아란히

비에 젖고

 

목매기 송아지가

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굽잇길

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산비

구름 속에 조는 밤

 

길처럼 애닯은

꿈이 있었다.

 

*이별은 우리 겨레의 보편적 감정에 애필해 오는 시의 소재다.

향토적인 배경에 보슬비 내리고, 흰구름 날고, 쑥순이 돋아나 있고...... 색깔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향토적 서정이 어린 한 없이 슬프면서 아름다운 시이다.

 

 

<보리고개>

 

보리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블랑은 유럽,

와스카라는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어의 보리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어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어의 보리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정 순 이(3)>

 

네 눈은

난초 숲 속에

흑수정 호수

 

추사(추사)가 쓴 글씨

한일자 같은 눈썹 위엔

언제나 4월의 아지랭이가

졸고 있다.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그 화려한 동굴엔

안디미온이 아직도

잠자고 있는 것 같다.

 

댓잎에 싸이는

달빛 같은 미소

한 10년을 뒤로 아득히 밀어내고----

 

수면에서 살아오고 있다.

바위 앞에서도

네 모습은 그 속에 살아 있다.

조용한 하오엔 하늘에도 산다.

 

 

<촛 불>

 

촛불 !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 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5월이 오면>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 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린 난초가

꽃 피는 날

 

미류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이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낙엽 시초(詩抄)>

 

꽃잎으로 쌓아올린 절정에서

지금 함부로 부서져 가는 '너'

낙엽이여 !

 

창백한 창 앞으로

허물어진 보람의 행렬이 가는 소리

가없는 공허로 발자국을 메우며

최후의 기수들의 기폭이 간다.

 

이기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저 찢어진 깃발들

다시 언약을 말자

기울어지는 황혼에

내일 만나는 것은 아니다.

 

고궁에 국화가 피는데

뜰 위에 서 있는 '나'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문을 닫으라

낙엽

다시는 내 가는 곳을 묻지 마라.

 

 

<산 새>

 

창을 열어 놓았더니

산새 두 마리 날아 와

반 나절을 마루에 앉아

이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아 갔다.

 

어느 산에서 날아 왔을까

구름빛 색깔

백운대에서 날아 온

새였으리라.

 

새가 남기고 간 목소리는

성자의 말처럼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곧 귀에 남아 있다.

 

새가 앉았던 실내에선

산 냄새, 봄풀 구름 향기

맑은 물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산새같이 마음 맑은 사람은

이 세상에 정녕 없을까

그가 남긴 음성은

성자의 말이 되어

이 따에 길이 남을..... .

 

오늘도 나는

창을 열어 놓고 있다.

산새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사랑이 자라는 뜰>

 

아직도

내 체온이 식지 않은

풀씨를 한 움큼

창 앞에 뿌려 놓고

새를 기다린다.

 

늙은 참새 한 쌍이

날아와

마음 놓고

내 체온을 다 주워 먹었다.

 

따사한 정에

허기를 면하고

몸이 풀려 서늘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

 

얼마간 졸다가

구름밭을 지나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

 

지금 창 앞에는

새가 두고 간 사랑이

풀잎으로

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