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너에게............신 동엽

바보처럼1 2006. 12. 8. 22:56

<너에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진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눈 터

새순 돋듯

 

허구많은 자연 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아니오>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도시 계집 사랑했을 리야.

 

 

<오렌지>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지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한국시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강 은교  (0) 2006.12.08
하늘은 금가지 않았다...........이 인석  (0) 2006.12.08
우 산..........신 동문  (0) 2006.12.08
역설의 꽃...........신 기선  (0) 2006.12.08
갈 대............신 경림  (0) 200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