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조그만 사랑 노래............황 동규

바보처럼1 2006. 12. 22. 22:14

<조그만 사랑 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주지적 서정의 시인으로 알려진 황 동규는 영시의 지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계속 한국적 정서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봉준(琫準)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胞)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ㅇ르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 매었으련만,

목 매었을련만, 내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 다리에

형제이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작자의 현실 의식과 자아 의식이 강렬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인의 정의감은 전 봉준이라는 역사상 인물을 통해 상징화되고 있다.

 

 

<풍 장 32>

 

가을날

풀잎의 한 가닥으로

사근사근 말라

몸의 냄새를 조금 갈고

바삭바삭 소리로

줄기와 뿌리에 남몰래 하직을 하고

쌍사발 시계가 눈망울 구울리며

빨간 꼬리들을 달고 날아다니는 공간속으로

잠자리채 높이 쳐든 소년이 되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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