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역관 오경석의 외교활동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7) 역관 오경석의 외교활동 조선시대 외교의 강령은 사대교린(事大交隣), 즉 ‘큰 나라 중국은 섬기고 이웃 나라 일본과는 사귄다.’는 것이다. 외교는 예조(禮曹)에서 관장했지만, 실제적인 사무는 사역원과 승문원(承文院)에서 맡았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통.. 역사 2007.07.03
(26)개화파의 비조 오경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6) 개화파의 비조(鼻祖) 오경석 우리나라 개화파의 비조(鼻祖)로 흔히 오경석·유대치·박규수 세 사람을 꼽는다.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은 북경을 열세 차례나 드나들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는 청나라의 모습을 보고 자주적으로 개화해야 한다.. 역사 2007.07.03
(25)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25) 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Ⅱ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조선을 후금과의 대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절실했던 명은 고민을 거듭했다.‘찬탈’을 자행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응징하여 상국으로서 명분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이미 바뀌어버린 조선의 현.. 역사 2007.07.03
(42)백제출신 왕비 화신립 왕후 백제출신 왕비 화신립 왕후 @#@-->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42>백제출신 왕비 화신립 왕후 헤이안의 문화제왕 '간무의 시대' 열다 ◇간무 일왕의 사당인 헤이안신궁 전경. --> 일본 고대사 중 헤이안 문화시대(794∼1192)를 활짝 연 인물은 ‘문화의 제왕’으로 알려진 제50대 간무(.. 역사 2007.06.20
(41)나라의 명찰 藥師寺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41>나라의 명찰 藥師寺 백제인 고승들의 염불소리 들리는 듯 ◇일본 나라시대의 명찰인 야쿠시지(藥師寺) 큰 가람. 본전인 금당(가운데)을 비롯해 ‘동탑’(왼쪽)과 ‘서탑’은 모두 일본의 국보로, ‘이중이각(二重二閣)’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 역사 2007.06.20
(40)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이즈모대새'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40>시마네현 이즈모市의 '이즈모대사' 소잔오존 모신 15곳중 으뜸가는 큰 사당 -->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出雲) 땅에는 신라계의 대국주신을 제사 모시는 이즈모대사가 유명하다. 경북도의 맞은편 지역이다. 이 큰사당의 “주신인 대국주신의 위패는 서.. 역사 2007.06.20
(39)아스카니이마스신사의 신라 대국주신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39>아스카니이마스신사의 신라 대국주신 "매우 잘생기고 염복도 타고나 처 6명·자식 181명” 설화 전해 ◇‘큰 남근석 신령’을 모시는 사당(奧の社). --> 일본의 백제왕실 터전인 아스카(飛鳥) 땅에 신라신 대국주신(연재 23회 참조)의 사당인 ‘아스카.. 역사 2007.06.20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양반 관료들은 고유 업무가 있었으므로 일생에 한번 사신으로 가기 어려웠다. 두 차례 이상 나갔던 문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역관들은 외국에 나가 통역하는 게 업무였으므로, 능력만 인정되면 몇 번이라도 나갔다. 외국에 .. 역사 2007.06.20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지방에는 중인이 맡을 관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신분은 호적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와그너 교수가 1663년에 작성된 서울 .. 역사 2007.06.20
(23) '동래부순절도' 그린 장교 변박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3) ‘동래부순절도’ 그린 장교 변박 부산(동래)은 일본(쓰시마)과 맞닿아 있어, 국방상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외교와 무역이 이뤄지던 왜관(倭館)이 부산에 있었고,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동래읍성과 부산진성도 역시 부산에 있었다. .. 역사 2007.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