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조희룡이 지은 전기집 '호산외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7) 조희룡이 지은 전기집 ‘호산외기’ 사마천은 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본기(本紀)·표(表)·서(書)·세가(世家)·열전(列傳)의 다섯 가지 체제를 채택했다. 본기는 제왕들의 이야기이고, 표는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서는 제도를 서.. 역사 2007.09.11
(35) 명과 후금의 정세 3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 역사 2007.09.11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 역사 2007.09.04
(34)명과 후금의 정세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천계 연간 격렬한 당쟁이 빚어지고 결국 위충현을 비롯한 엄당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그 불똥은 곧바로 산해관 바깥으로 튀었다. 요동, 요서(遼西)의 방어를 책임진 최고위 지휘관들 또한 당쟁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당파에 속하느냐가 .. 역사 2007.08.30
(50) 왕인 박사의 詩 '나니와쓰노우타' 왕인 박사의 詩 '나니와쓰노우타'@#@-->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50> 왕인 박사의 詩 '나니와쓰노우타' 닌토쿠왕에 헌정… 日 정형시 '와카'의 뿌리 ◇왕인 박사를 모시는 일본 다카이시신사 본전. --> 일본 속의 백제 왕인 박사의 본 터전은 오사카 땅인 ‘구다라스’ (백제주)의 .. 역사 2007.08.30
(35) 조희룡이 만든 중인 문학동인 '벽오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5) 조희룡이 만든 중인 문학동인 ‘벽오사’ 조희룡(1789∼1866)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중인 친구들과 사귀었다. 그런 교우관계를 통해서 보고 들은 선배 중인 42명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56세에 저술한 ‘호산외기(壺山外記)’인데,3년 뒤에 다시 새로운 .. 역사 2007.08.28
(49)나라 명사철 사이다이지 西大寺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49>나라 명사찰 사이다이지 西大寺 한국인 화가가 그린 日국보 '십이천화상' 보관 ◇백제계열 고대 일본 지배자였던 쇼토쿠여왕의 명으로 한국인 건축가에 의해 8세기 나라현에 건립된 일본 사찰 사이다이지 입구. 일본 나라시 서쪽에는 고대 백제인.. 역사 2007.08.24
(33) 명과 후금의 정세 1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 역사 2007.08.22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신분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는 여러 갈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사대부들도 많았지만 중인 쪽에 특별히 많았다. 이상적 같은 역관 제자는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 주었으며,.. 역사 2007.08.20
(32)모문룡의 작폐 2 [병자호란 다시 읽기] (32) 모문룡의 작폐 Ⅱ 인조반정 이후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겨 송덕비까지 세우게 되자 모문룡은 기고만장했다. 그는 조선에 군량을 비롯하여 전마(戰馬), 조총, 병선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큰 문제는 그 휘하의 장졸(모병:毛兵)과 요민들이 끼치는 민폐였.. 역사 200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