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박달재 아래 사는 소설가부부

바보처럼1 2007. 7. 10. 22:34
[전원속의 작가들]박달재 아래 사는 소설가부부
"자신을 버리는 공부중이죠"
 소설가 임영태(왼쪽)·이서인 씨. ‘가슴으로 질러가서 ’ 사람을 만나는 스타일의 아내와 고요하고 관조적인 성격의 남편은 빈 곳을 서로 메워주는 아름다운 부부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박달재 아래 단층집 목조 베란다. 탁 트인 시야 왼편에 멀리 천등산이 솟아 있고 바로 맞은편 가까이에는 동산처럼 야트막하고 예쁜 산이 보인다. 베란다 탁자 위에는 제천역에서 들어오는 길에 사온 막걸리와 김치 안주가 놓여 있다. 탁자 주변 의자에는 소설가 임영태(46)씨와 소설가 이서인(44)씨가 나란히 앉아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쓸쓸한 눈빛을 지닌 임영태와 검은 테 안경을 쓴 둥근 얼굴에 깊은 눈빛을 지닌 이서인은 소설가 부부다. 천등산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이서인의 머리칼을 흩뜨려 놓는다.

임영태는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뒤 1994년 다시 ‘오늘의 작가상’에 장편소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본디 관조적이고 고요한 성품이었는데 등단 3∼4년 후쯤에 이르러 자신의 성격이 통속적이고 속물적인 삶을 다루는 소설 쓰기에 맞지 않다는 자괴심이 들었다.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내일 일을 생각하지 않고 술도 마셔보고,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도 떠나보면서 나 자신과 맞섰는데 (옆에서 거드는 아내의 말, ‘이를테면 자신을 놓아버리는 공부, 혹은 자신과 세상과의 경계 없애기 같은 것이죠.’) 지나 놓고 보니 자신의 기질에 맞게 사는 방식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바로 그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에요. 사람을 만날 때 머리를 굴리지 않고 가슴으로 질러가서 만나는 스타일이지요.”

임씨 부부가 박달재 아래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은 2002년 8월. 2년 정도 먹고살 생계비를 마련해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가 천등산 아래 전망 좋은 모정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주 첫해에는 집 앞 300평의 밭에 욕심을 내어 다양한 작물을 심었지만 초보농사꾼들은 몇 가지 품목을 어설프게 수확하는 것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올해에는 작물들을 대폭 정리해 고추 상추 고구마 쑥갓 등속의 몇 가지에만 알차게 집중할 계획이다. 농촌 마을에 대처 사람이 정착하려면 술을 잘해야 한다고 임씨는 말한다. 마실을 나가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앉히고 술부터 내온다. 다행히 임영태도 술을 잘하고, 부인 이서인 또한 임씨보다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데 격의 없는 성격이라서 이들은 이주하자마자 금방 모정리 사람들과 한 묶음이 되었다.

“소설가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지 않고 호젓한 시골로 잠적해서 살면 소설이 제대로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시의 뻔한 인간관계 속에서 의례적인 행사에 왔다갔다해야 하는 상황에 비해 번잡한 관계에서 벗어나 집필과 농사에 전념하면서 소설에 필요하면 것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취재도 할 수 있는 상황이 특별히 더 나쁠 게 있겠습니까?”

전업작가라면 도시에서 사는 것이나 시골에서 집필하는 두 경우가 세상과의 접촉 차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런저런 문단 사람들과 만나면 청탁도 들어오고 이른바 ‘밥벌이용’ 원고를 수주할 가능성이 큰 데 비해 외진 곳에 살다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고 임영태는 말한다. 시나리오, 동화 등속의 청탁을 받고 그 원고료를 생계비 계획에 포함시켰는데 내려와서 펑크가 나버렸다는 것이다. 막걸리 잔이 여러 번 오가던 차에 임씨가 갑자기 집앞 산모롱이 비탈 밭을 가리킨다. 웬 짐승이 대낮에 대담하게 겅중거리며 밭을 가로질러간다. 노루였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 등이 활약했던 19세기의 소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의 절정기로 일컬어지는 그 시기에 인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모두 끝났다고 하지만, 다시 반복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대에 나온 소설처럼 웅혼한 작품을 써보고 싶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텐데 40대가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합니다.”

임영태는 고교 시절에 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해 ‘죄와 벌’만 7번을 읽었을 정도로 고전적인 소설의 깊이에 매료된 작가다. 그는 주로 밤에 글을 써왔는데, 도시에서는 낮 12시에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밤에 특별히 집중해서 글을 쓰지 않는 한 새벽에 일어나 집 앞의 들판으로 나간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어느 늦가을에 보았던 들녘의 서리에 깊이 감응했다.

“여명의 시각에 들판의 찬 서리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애틋한지 눈물이 납니다. 풍경 자체는 스산하지만 그 그림 속에서 세계의 배후가 감지됩니다. 물론 세계의 배후는 도시의 지하철 안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시골에서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자주 불쑥불쑥 찾아오지요.”

이서인에게 최근에 출간한 장편 ‘특별한 선물’(화남)에 대해 물었다.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단편소설 ‘생각보다 가벼운 일’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와 이미 2001년 첫 장편 ‘숲속의 연어’를 펴내기도 했던 이씨는 공식적인 인터뷰에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옆에서 남편이 대신 거든다.

“이 사람은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독특한 시선을 지닌 소설가입니다. 첫 장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단히 강렬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지요. 얼마 전에 나온 두 번째 장편은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단순하게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아한 교양인의 치사한 이기주의를 다룬 작품입니다. 교묘하게 위장된 지독한 이기심은 사악한 것이죠.”

옆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얼굴을 붉히던 이서인은 “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 읽히면 물론 좋겠지만 이름이 알려지고 베스트셀러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은 전혀 없다”며 “내 작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한두 명만 되더라도 그들을 위해 소설을 쓰겠다”고 말한다.

해가 저물 무렵 부부와 함께 백운면 면사무소 거리로 나왔다. 찾던 칼국수집이 문을 닫아서 일행은 좁은 지역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다방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자연다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아무리 주인을 불러도 응답이 없다. 하릴없이 그냥 나와 근처의 ‘꽃다방’으로 들어갔지만 역시 주인은 자리를 비웠다. 한가롭기 짝이 없는 거리의 나른한 다방에서 일행은 물잔을 가져다 놓고 마지막 담소를 나누었다.

“선배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 나오는 황야의 이리 같아요. 여기에 내려오자고 먼저 제안했을 때 두말없이 응낙하더군요. 이곳에서 평생 살 거예요. 황야의 이리는 내년쯤 1년 동안 여행을 하겠답니다. 어디로 갈 건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이서인은 남편을 ‘선배’라고 불렀다. 부부 중 한쪽만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배우자의 예민한 성정을 감내하고 글쓰기의 고통을 지켜보기에 쉽지 않을 터인데 두 사람 다 소설가라면 많이 힘들지 않을까? 그들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했다. 웬만하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글쓰기의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엄살’도 부려볼 만하지만 서로 빤히 사정을 알기 때문에 티도 내지 못하고 스스로 결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영태는 한 달에 두어 번 도시 나들이를 하지만 아내 이서인은 박달재 아래를 나서지 않고 칩거하다시피 살고 있다. 서로 곁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부리를 비비며 자신들만의 소우주를 만들어 가는 그들을 보면서 무인도인들 상관이 있으랴 싶었다.

제천=글·사진 조용호기자/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