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은 등단 햇수로만 치면 22년째 접어든 중견작가다.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한 뒤 긴 침묵을 지켰다. 그가 다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것은 10년도 더 지난 1995년 장편 ‘길 위의 집’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였다. 이 득의의 장편은 바야흐로 해체 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시대 가족의 자화상을 밀도 높게 형상화함으로써 문단 내외의 상찬을 받았다.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책은 이 장편 한 권과 두 권의 소설집 ‘그 집 앞’(1998년)과 ‘꽃 그늘 아래’(2002년) 등 3권뿐이다. 비슷한 경력을 지닌 또래의 작가들에 비하면 과작인 셈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손에서 소설을 놓아본 적은 없다. 소설 쓰는 스타일이 워낙 꼼꼼하고 머뭇거리는 편이어서 하루종일 옷감을 짜다가 밤이 되면 다시 풀기를 반복하는 페넬로페처럼 더디게 한땀 한땀 소설을 지어왔을 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뒤 뒤늦게 그의 그러한 노력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2002년에는 현대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을 받았고, 장편 ‘길 위의 집’은 지난 3월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 장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첫 번째 만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안해 보인 것은 그 사이 상으로 격려받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산 신도시에서 살다가 인도네시아로 갔던 이혜경은 그곳에서 단출하지만 소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곳에 비해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 많이 소비하는 생활이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체득한 삶의 방식을 도시에서 실천하기에는 오히려 주변 시선들이 거북했다. 어떤 나이 정도에 이르면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부담스러웠고, 그들과 다르게 사는 자신이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염려됐다. 그것이 아무 연고도 없는 여주 땅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연말쯤이면 다시 더 깊은 시골로 들어갈지, 아니면 도시로 나갈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흔히들 전원생활을 미화하지만 정작 답답하고 불편한 게 많습니다. 낭만에 대한 모욕일지도 모르지만 해질녘의 남한강은 눌은밥을 혼자 긁어 먹으며 무연히 내려다보는 풍경일 따름입니다. 사실 어디에 살아도 평생 살 것처럼 퍼져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사는 동안에는 편한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 같은 것은 늘 있지만, 그냥 살지요, 뭐.”
또한 동시대 평범한 인간들의 애환을 연민으로 감싸 안는 깊이가 각별하다. 그의 출세작 ‘길 위의 집’의 주인공 여성 은용이가 오빠들로 상징되는 남성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면서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페미니즘 성향의 진행자는 작가에게 작품의 결말이 아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교육받은 평균적인 여성들의 경우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게 오히려 리얼리티에 가깝다고 대답했다. “페미니즘은 정의가 다양해요. 하지만 그 본질은 남자와 여자가 적이 아니라는 거지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약한 존재와 강한 존재가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전에 장상 총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남성 의원들에게 몰렸을 때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성들이 반발했지만, 그 경우 장상 씨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성의 연장선상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고 나선다면 패거리주의와 다를 게 없지요.” 그의 말마따나 그의 작품들에는 남성들에 대한 연민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 연민은 단순한 연민인 경우 동정에 그치고 만다. 인간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동반돼야만 그 연민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혜경은 그 점을 강조했다. 대충 남성과 여성을 두루뭉술하게 껴안는 절충주의를 그는 배격한다. 삶의 진상을 분명하게 바라보되 대립의 구도가 아닌 따뜻한 시선인 것이다. “사실 저는 두 가지 일을 못해요. 어린 시절 꿈이 현모양처였지만 주부와 소설쓰기를 병행할 자신이 없어서 소설과 살아갈 뿐입니다. 주부의 역할에 비해 소설은 험하고 더 부대껴야 하는 편입니다. 교사를 할 때나 여성지 기자로 살 때는 소설을 못 썼습니다. 그걸 그만둔 뒤에서야 천천히 소설을 따라왔지요. 남들이 보면 과작이라 쉬는 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소설을 놓아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소설이 저에게로 왔고, 그때그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심정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카페에서 나와 해 지는 강변으로 내려갔다. 강변의 자갈 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그런 작가들이 있다. 세상 바깥에서 해일이 일고 폭풍이 지나가고 비바람이 불고 유행이 몇 번씩 바뀌어도 자신 안의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느리지만 쉼없이 길을 가는 사람. 작가 이혜경은 그런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사실, 대부분 작가들의 운명이 그러할 터이다. 그들은 자신이 자초한 캄캄한 글 감옥에서 마음의 지도를 따라 세상에 펼쳐진 길을 찾아가는 고독한 탐험가들일지도 모른다. 이혜경은 그 중에서도 유독 소설쓰기의 고통과 고독에 대한 과장된 엄살도 드러내지 않고, 타성에 젖은 게으름과도 거리가 먼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소설가의 운명을 조금씩 지어가고 있을 뿐이다. 작별인사를 한 뒤 그는 붉은 석양 속으로 등을 보이며 타박타박 걸어나갔다. 힘든 것도 아니고 만만한 것도 아니지만, 그저 소설의 길을 살아낼 뿐이며, 그 길이 달빛에 젖은 물길이라도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듯이, 그렇게.
여주= 글·사진 조용호기자 /jhoy@segye.com |
2004.05.24 (월) 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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