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고국에 나와 이천에 자리잡은 재미화가 최 동열씨

바보처럼1 2007. 7. 10. 22:40
 
[전원속의 작가들]고국에 나와 이천에 자리잡은 재미화가 최 동 열씨
"삶이란 만드는 것 결정된대로 사는건 재미없지요"
 요즘 미술계에선 “새로운 미술은 미술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미술 안에는 미술이 없다. 교과서 밖의 넓은 삶의 현장에 미술이 있다”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최동열씨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긴 여로를 끝낸 여행자의 모습일까. 아니라면 영원한 보헤미안 같은 방랑자일까. 경기도 이천에 통나무집을 얻어 작업실로 쓰고 있는 재미작가 최동열(53)씨는 한마디 말로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진정한 자유인이라고도 한다.

“인생을 이미 만들어지고 결정된 대로 사는 것은 재미가 없어요. 삶이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어야 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유복한 집안 배경을 마다한 이유다. 국내 1호 변호사로 독립선언 33인을 변호했던 최진씨가 조부이고 철원 유지집안 출신의 조모는 소설가 나도향의 친누님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바로 ‘인사동 누님’이다. 부친은 국내 첫 슬롯머신을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경기중학을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건너 뛴 작가는 15세에 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 2학년 때인 16세로 해병대에 자원, 월남으로 떠난다. 새로움과 삶의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해병 첩보부대(HID)에 근무하면서 그는 전쟁의 비인간성을 몸으로 읽는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옮겨졌다. 뉴저지 주립대 생활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조숙한 그에게 대학은 어리기만 했다. 클럽의 기도, 술집 웨이터, 공장 일 등이 그의 배움터가 됐다. 틈틈이 히말라야와 아프리카 콩고강 등을 여행하기도 했다. 일종의 오지체험으로 고생을 자처한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고스란히 글과 시가 됐다. 자서전 ‘들개와 선임하사’, 곧 출간 예정인 소설 ‘돌아온 회전 목마’와 미학을 논한 ‘아름다움은 왜’라는 책들이 생산물들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배경이 됐던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의 풍광에 매료된 그는 무작정 그곳으로 떠났다. 동갑내기 미국인 아내 로렌스와의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해서 이뤄졌다. “아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와 있었지요. 시내 카페에서 그림을 걸고 있어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어요.”

서로는 단번에 대화상대가 됨을 알아차리고 가깝게 지내면서 멕시코 등지로 스케치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그림이 글보다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지요.” 텍사스 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의 동료들과의 교류가 큰 자양분이 됐다.

결혼 후 외동딸이 생기면서 뉴욕을 떠나 워싱턴주 올림픽반도로 거처를 옮겼다. 아이에게 인공적 정원이나 공원이 아니라 자연을 친구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작가는 아내와 그동안 진도와 청평 등지에 머물며 몇 차례 한국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고교생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 한국에 작업실을 마련해 부부가 정주할 생각이다.

“미국 작업실은 밤바다의 안개가 특히 운치가 있어요. 코요테의 울음소리에 잠이 들고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서너 시간씩 강을 걸으며 연어낚시를 해도 사람은 만날 수 없어 새를 벗삼아야 할 정도지요. 생각할 시간은 많으나 역설적으로 그것을 소화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자신이 화가라는 인식까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그에게 이런 것들을 허락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산수의 디테일한 맛이 오히려 톡 쏘는 청량제 구실을 하지요.”

그에게 머무는 곳은 모두가 작업공간이 된다. 미국에선 작업실 주변에 라벤더를 재배해 다양한 색깔의 염료를 만들어 썼다. 허브식물이라 아내는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식물을 재배하는 것도 삶처럼 과정이 중요하지요. 농사는 작가에게 창조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제격입니다.”

예술을 하려면 전쟁터에 나가 보거나, 감옥생활과 애키우기 중에 적어도 하나는 해 봐야 한다는 통설에 작가는 동의한다. 농사는 애 키우기와 같단다.

멕시코에선 마야족과 생활을 같이했고 이천에서도 예술가의 이름이 아닌, 음식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주민으로 흡수된 삶을 살고 있다. 멕시코의 원시적 강렬함과 이천 도자기의 멋이 소득으로 얻어졌다.

“이천생활은 청자와 백자의 이미지로 한국산수를 읽어내는 안목을 허락했습니다. 비로소 제대로 한국산수를 그리게 된 것이지요. 어려운 정물과 산수의 조화도 가능해졌어요.”

밖에서 안을 보는 동양화의 전형적 구도도 안에서 밖을 보는 구도와 조화를 시켰다. 안과 밖의 하모니를 이룬 것이다. 한국산수와 누드의 조합도 시도했다.

상체만 드러낸 이인성의 ‘어느 가을날’을 한국누드화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는 작가는 수동적인 근대공간에서 문학과 미술 모두 근대성이 싹트자마자 현대의 격랑에 휩쓸린 것을 못내 아쉬워 한다. 능동적인 근대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로 대표되는 19세기 문학처럼 인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치열했던 적은 없었지요. 미술도 사정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탐색기도 없이 현대의 비구상에 덮친 한국근대미술의 처지는 그래서 처량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등 모습만 보인 작가의 누드작품은 근대성 성취의 첫 걸음이다. 등과 어깨로 이어지는 라인이 한국적 누드를 고한다. 거기엔 수줍음보다 당당함이 있다.

작가는 잠에서 깨어나 커피향에 취해 그림을 그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록의 색깔을 화폭삼아 주변산을 산책하며 마음속 그림도 채워간다.

TV 앞에 그린 그림을 놓고 바라보노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이제사 산사 수행승의 마음을 알 것 만 같다. 2일∼16일 선화랑 개인전. 02-734-0458.

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연보>

▲1951년 부산출생 ▲1973년 도미 ▲국내전 6회, 미국전 6회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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