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

제주 귀덕리서 작업하는 화가 강요배

바보처럼1 2007. 7. 11. 05:17
[전원속의 작가들]제주 귀덕리서 작업하는 화가 강요배
"자연을 뒤지다보니 내면이 보였어요"
제주시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 귀덕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화가 강요배(52)의 작업실이 있다. 저만치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오는 그의 머리 위로 구름 그늘이 따른다. 귀향 10년째인 2001년에 그는 제주 여기저기를 떠돌다 이곳에 정착했다.

포구 횟집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소주 서너 잔을 입에 털어넣은 그가 말문을 연다. “공부하는 심정으로 10년간 제주를 뒤졌어요. 제주 출신이지만 자연적 풍요를 새롭게 발견했지요.” 그는 3∼4년간은 감동에 빠져 살았다.

가까이 있는 자연이기에 쉽게 취하고 싫증도 따랐다. 차츰 자연이라는 소재에 경도되면서 내면화 작업에 방해가 됐다. 창조적 구상과 이미지가 촉발되지 않았다.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그리고 싶은 것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작업실 정원에 인공 연못을 만들어 수초와 연꽃,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물이 지하로 흘러버리는 제주에서 연못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못 바닥의 틈새를 막고 수생식물이 살아가도록 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수생식물을 화분에 심어 물속에 던져넣어 가까스로 뿌리내리게 하는 등 자연의 평형이 유지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다 몸으로 터득했다. 새와 개구리 등 생태계의 주인공들이 놀러오기 시작했다. 최근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유자나무와 해바라기 등은 그가 손수 정원에서 키우는 것들이다. 자연이 객관적인 대상에서 마음속 손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취기가 오르자 그의 입에서 말들이 쏟아진다. “고민은 있는데 뭘 고민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힘이 없어 보입니다. 세상에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많아지니 옛날처럼 그림 그리는 것이 주목되는 영역은 아니지요.”

그는 요즘 그림으로 할 수 있는게 뭔가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심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때론 화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임에도 의식적으로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아탐구 같은 것일 거예요. 속마음(깊은 내면적인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그림인 것 같아요.”

작가는 자꾸만 더 깊은 차원이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속을 스스로 끄집어내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자연의 울림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제주 생활이 알아차리게 했다.

“괜찮다 싶은 작품은 느낌마저 깊어요. 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게 바로 거기에 있지요. 그림은 결국 마음의 심연을 캐는 작업입니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겉에 널려 있는 것들(상념, 타인의식, 머릿속 잔꾀와 기법들)을 걷어내는 일. 그는 아침시간 책을 읽고 밭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가라앉힌다. 그러다 보니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너시간만 작업이 가능하다. 남이야 한가로워 보이지만 해야 할 숙제를 안 한 학생의 심정이다. 철학서부터 건강 과학서까지 두루 읽어 작품으로 녹여낼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의 작업실엔 주역에서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까지 고루 갖춰져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왜 공부를 해야 하나 근본적인 질문에 고민을 했지요.” 이제 작가는 80년대 시대의 아픔을 껴안았던 것을 넘어 물 흐르듯 살고 싶어한다. 그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경지다. “이젠 나를 추스르고 내가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돼야 남에게 안정감을 주지요.” 그는 나이들어 말년엔 해학적인 작품까지 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꿈이듯, 그도 자유롭게 사는 게 목적이란다. 화가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규정을 하고 싶지 않다.

창문여고에서 7년간 교편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1986년 셋방살이를 해도 그림을 그리면서 살겠다며 학교를 그만뒀다. 한때 삽화 전문가로 승승장구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아픔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일선에 나섰다. 다니던 직장이 망하면서 원하던 그림만을 그리게 됐다. 제주에 대한 그의 생각은 각별하다. 물로 구획된 독자적 생태 시스템을 갖춘 완결된 공간, 좌표의 중심이자 우주로 나아가는 상상력이 작동되는 공간이다. 세계 축소판이기도 하다. 축소되어 있어 명료하고 사고 영역의 ‘확대하기’가 용이하다. 하나의 섬이 아닌, 중심사고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천하를 대적 할 만한 상상의 보고가 제주입니다.”

그의 등뒤로 바다 저편 고깃배의 불빛만이 외로이 출렁이고 있다. 그의 얼굴 실루엣이 쓸쓸하다. 달도 보름달이다. 제주는 달도 예쁘게 뜬다는 그가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말처럼 내뱉는다. ‘생존의 지평에서 논하라. 죽음이 자유롭게 살라 한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그가 마음을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서는 것뿐이었다. 자연 앞에 서면 막혔던 심기마저 시원하게 뚫렸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거나 격렬하게 후려치면서 자연은 자신의 리듬에 작가를 공명시켰다. 바닷바람이 스치는 섬 땅의 자연은 차츰 작가의 마음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제주서 공부하고 있다고.

제주=편완식기자/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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