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속의 작가들]구리시 아차산 자락서 사는소설가 박완서 |
"어둠속의 고요함 외로움의 멋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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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4시까지 소설가 박완서(74)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지만 일행들과 합류하느라 늦어진데다, 아직 낮인데도 비가 조금씩 뿌리는 어두운 날이어서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야외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릴없이 소설가의 거실 식탁에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와인 잔을 여러번 맑은 종소리가 나도록 부딪치고 나니 바깥은 금방 캄캄해져 버렸다. 일행 중 하나가 뒤늦게 비 냄새를 풍기며 들어섰고, 그는 천둥과 번개를 뚫고 달려왔다고 했다. 실내에 있던 이들은 미처 몰랐는데 아닌게 아니라 유리창에는 굵은 비알갱이들이 쉼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박완서가 구리시 아차산 밑에 집을 지어 이사온 것은 1998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1년 만에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라는 묵상집을 펴냈는데, 이 에세이집에서 한옥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주한 뒤 만년에 전원 속의 집으로 들어온 소회를 피력했다. 그때 그는 아차산의 밤나무 숲을 바라보며 아침에 들어간 이나 저녁에 들어간 이들 모두 똑같은 양의 밤을 주워오는 모습을 보고, 저 숲에는 공평한 분배의 손길이 깃들어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5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감동이나 신선함은 지루함으로 바뀌지는 않았을까. 대부분 홀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이 집에서 바람이 흔들어대는 아차산 나무들의 이파리 소리가 늦가을 밤 스산하게 잠을 깨우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아요. 저 숲은 늘 아름다워요. 가을에 아차산 나뭇잎들은 온통 갈색 바다를 이루는데 지난해 어느 아침인가, 바람이 숲 끝에서부터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물결을 이루어 내게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참새떼들이 날아오는 것 같더라고요.” 아치울 마을에 들어설 때 골목마다 떨어져 있는 낙엽과 길가의 단풍나무들이 비에 젖은 축축한 길과 더불어 유럽의 전원마을을 방불케 했다. 아차산은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검게 흔들리는데, 박완서의 집 마당에 피어 있는 가을꽃들은 저마다 생생하게 어둠 속에서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아무리 정원의 꽃들이 아름답고 아차산 정경이 보기에 좋아도 홀로 지내는 삶은 역시 쓸쓸하지 않을까.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요. 홀로 식사를 할 때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잘 차려놓고 즐겁게 먹어요.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나, 속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냥 이게 내 팔자인가보다 하지요. 어떤 때는 바깥에 나가 오전에 일을 보고 오후 늦게 다른 약속이 잡혀 있을 때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요.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나가야 더 편하답니다.” 이야기 사이에 일행들의 농담과 정겨운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빈 와인병은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쯤 갑자기 실내의 전깃불이 모두 나가버렸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던 예전에는 가끔씩 전기가 나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인데, 아마도 이 마을로 오는 어느 전신주가 낙뢰라도 맞은 모양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불이 켜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달빛 때문에 바깥 풍경이 선명하게 들어오는가 싶었더니 아차산 너머 대도시의 불빛이 구름에 반사돼 잔영을 산 너머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창밖 어느 집에도 이런 경우에 대비할 초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박완서는 선물로만 받아두었지 제대로 한번도 써보지 못했다는 다양한 무늬와 형상의 초들을 내왔다. 식탁이 은은한 촛불 바다를 이루었다. 일행의 그림자가 촛불에 일렁이며 유리창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한강이 호수처럼 형성돼 있는 곳까지 산책을 다녀오지요. 오전에 거두어야 할 게 많을 때는 마당에서 두세 시간씩 보내요. 너무 좋아요. 꽃들과 얘기를 해요. 그 아이들이 하는 얘기도 들어요. 꽃나무들이 비에 쓰러졌을 때 흙을 돋우어주면서 왜 쓰러졌니, 빨리 일어나거라, 그러면 다음날 일어나요. 얘들이 참 착해요. 말을 잘 들어요. 아직까지도 백일홍이 피어 있는데 나비들이 이 꽃들을 찾아서 낮에 많이 놀러와요. 나비들에게도 얘기를 하지요. 내년에도 너희들을 위해 다시 이 꽃들을 심으마.” 이렇게 정이 담뿍 든 집에 살면서 최근에는 그도 속이 상하는 일을 겪었다. 집 앞 아차산 바로 곁에 누군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바라보이던 아차산 정경 한쪽이 좀이 슨 것처럼 망가졌다. 그러던 차에 새댁 시절부터 20여년 간 살았던 한옥 시절이 그리워 삼청동과 가회동 쪽에 한옥 보존지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쪽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일반 한옥은 옆에 다가구주택이라도 들어서면 환경이 금방 망가지는데 한옥보존지구는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방 그 집들의 값이 뛰는 바람에 하릴없이 포기하고 집에 돌아와 정원의 꽃나무들을 보다가 후회를 했다. “어떤 구근(球根)들은 봄이면 제일 먼저 꽃을 피웠다가 사라지지만 가을이면 벌써 파랗게 싹이 올라오기 시작해요. 겨울이 와도 얘들은 죽는 게 아니라 잠시 쉴 따름이지요. 수선화는 벌써 싹이 파릇파릇 보여요. 마당에 앉아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구, 미안하다, 안 떠날게, 했지요.” 박완서는 최근 첫사랑의 추억을 담은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을 펴냈다. 한국전쟁 과정과 그 이후 황량한 삶을 견디게 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뼈대로 지나온 삶을 견결하게 풀어놓은 장편이다. 그는 이 소설을 펴낸 뒤 2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지인 집으로 잠시 떠날 예정이다. ‘그 남자네 집’에 나오는, 미국으로 이민간 춘희씨가 초청한 것이냐고 불쑥 물었더니 그는 “아이구, 소설 가지고 뭘 그래요?”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게 아니라고, 그저 식구보다 편한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갔던 전기가 들어오자 실내는 다시 환해졌는데, 일행 중 하나가 감상적인 분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게 싫어 금방 다시 불을 끄려 했지만 박완서는 만류했다. 전깃불은 들어왔어도 다시 와인잔은 돌아다녔고, 일행의 요청으로 박완서는 거실까지 들릴 정도로 볼륨을 키워놓고 안방의 전축을 틀었다. 이른바 ‘뽕짝’이라 불리는 트로트 가락이었는데 어떤 이가 박완서가 적어준 노래 목록만을 모아 녹음해온 음반이라고 했다. 노래 중에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이슬 맺은 백일홍”으로 흘러가는 ‘선창’이라는 뽕짝도 끼어 있었다. “나는 요새 저런 노래가 좋아요. 그동안 위선을 떨고 지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혼자 듣다가 울기도 해요.” 와인도 바닥이 나고 늦은 밤 피로가 몰려올 때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박완서는 현관 앞에 피어 있는 밤의 붉은 백일홍들을 가리키며 ‘이슬 맺은 백일홍’이 아니라 ‘가을비 맞은 백일홍’이라며 그 백일홍들은 슬프다고 했다. 그 녀석들은 홀로 아름다울 뿐,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외등에 반사된 붉은 백일홍이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함초롬히 비에 젖은 채 대문을 열고 나서는 손님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구리= 글·사진 조용호기자/jhoy@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