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진 택
가녀린 가지의 꽃망울을 한 줌 훑었다 나무들의 자세가 더 꼿꼿해진다 허락도 없이 훑어가는 내 손길을 쏘아보며 꽃들은 바닥에 떨어져 혈서로 저항한다 꽃망울이 맨살을 뚫고 나올 때의 고통을 아는가 설움에 겨운 여인처럼 나무가 소리 없이 우는 걸 보았다 고통이 너무 커 차라리 속울음으로만 물결지는 나무의 눈물, 새벽 이슬이 푸르른 잎 적시며 텅 빈 가지를 쓰다듬는다 방금 꽃망울 떨어진 나뭇가지를 따라 생긴 상처, 오늘따라 더 환하다
―신작시집 ‘환한 꽃의 상처’ (시와에세이 펴냄)에서 ▲충북 영동 출생, 경성대학교 불문과 졸업 ▲1993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텅 빈 겨울 숲으로’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 등 |
2006.08.04 (금) 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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