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성북동 비둘기..........김 광섭

바보처럼1 2006. 7. 20. 23:25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인에게 축복의 메시지난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을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문학(1968.11) 수록

기계 문명 속에서 자연미와 평화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개탄하고 있다.

*주제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향수

*마자막 3행은 현대인의 극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비둘기: 평화와 사랑

*포성,구공탄: 현대 문명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묽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문장(1939.6)수록

밝고 고요한 내심의 은밀한 동경을 노래한 시.

*주제는 고요한 마음의 그리움.

*돌을 던지는 사람: 해를 끼치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이권을 빼앗으려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유혹하는 사람

*백조: 이상

*물가: 마음

 

 

<생(生)의 감각>

 

여명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현대문학(1967.1) 수록

작자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1주일간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체험을 구상화한 시작품

*소재는 투병생활

*주제는 생의 신비스러운 부활

 

 

<동 경>

 

온갖 사화(詞華)들이

무언한 고아가 되어

꿈이 되고 슬픔이 되다.

 

무엇이 나를 불러서

바람에 따라 가는 길

별조차 떨어진 밤

 

무거운 꿈 같은 어둠 속에

하나의 뚜렸한 형상이

나의 만상에 깃들이다.

 

*김 광섭의 처녀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 1938년 7월에 발행된 시집<동경>에는 '동경'이하 3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송 별>

 

흰 손을 흔들어

그대를 불렀으니

그대를 부르는 소리

하늘 가에 차다.

 

내 눈에 의지하여

그대의 창을 따라갔으니

감장 포도알 속에

작은 초상이 걸리다.

 

돌아서던 길은 외로와

한 방울 눈물을 지녔으니

잠겨서 기다리려는

가냘픈 정이 다시 서러웠다.

 

 

<산>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녁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 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평야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가 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나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 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외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음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모두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별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답답하면 솟아서 높은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가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고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기슭에 언제나 봄이 먼저 오지만

조그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가까이 두 계절을

사이 좋게 지니고 산다.

 

 

<시 인>

 

꽃운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에 2 천원 아니면 3 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리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동아일보(1969.5.3)수록

*주제는 끝연에 압축되어 있는데, 마치 히포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말-"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금언이 연상된다.

시인은 가도 그 작품은 남는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주제는 영원을 살고 있는 시인.

 

 

<고 독>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

 

한 칸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 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고달픈 고기와도 같다.

 

맑은 정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그리운 세계의 단편(斷片)은 아즐다.

 

오랜 세기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神經)도 없는 밤

시계야 기이타.

너마저 자려무나.

 

*무척 지적인 면이 강한 주지시

하루 하루의 생존만이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지성인의 고민을노래하였다.

*주제는 무위(無爲)의 삶에 대한 자의식.

 

 

<비 갠 여름 아침>

 

비가 갠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의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시집<동경>(1938)수록

순수 자연의 감각을 아름답게 노래하였다.

시각적인 이미지와 아울러 작자의 밝고 깨끗안 정서가 나타나 있다.

*주제는 첫여름의 정취.

 

 

<해바라기>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 의욕의 씨 원광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제 1연: 해바라기의 배경

*제 2연: 해바라기의 전체적인 인상

*제 3연: 씨가 박혀 있는 부분

*제 4연: 잎사귀가 꽃을 경이 어린 눈으로 보는 듯한 자세

*주제는 해바라기를 통해서 보는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

 

 

<꽃. 나비. 시>

 

꽃이 피니

나비는 아름다운 활동가가 되어

꽃과 꽃 사이를 날기에

 

꽃은

연한 입술을 열어

두 나비의 이름까지도 부르나니

 

꽃은

지하의 향기를 다하여

미지(未知)와 친근하면서

 

꽃은 져도

영원은 실망치 않고

시는 자연과 함께 산다.

 

 

<고 혼(孤魂)>

-고 노 천명 시인에게

 

콧구멍을 막고

병풍 뒤에

하얀 석고처럼 누웠다.

 

외롭다 울던 소리

다 버리고

기슭을 여의는

배를 탔음인가

 

때의 집에 살다가

'구정물'을 토하고

먼저 가는 사람아

 

길손들이 모여

고인 눈물을

마음에 담아

찬 가슴을 덥히라

 

아 그대 창에 해가 떴다.

새벽에 감은 눈이니

다시 한번 보고 가렴

누군지 몰라도 자연아

고이 받아 섬기고

신(神)의 밝음을 얻어

영생을 보게 하라

 

*이 시에서도 이산(怡山)의 특징인"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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