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 엽>
임 가신
저문 뜰에
아껴 듣는 푸른 꿈들
잎잎이
한을 얽어
이 밤 한결 차거우니
쫓기듯
떠난 이들의
엷은 옷이 두렵네.
*낙엽에서 우주를 보고 있다. 시인의 애조는 내재화된 정한으로 표상화되어 있다.
전쟁과 이별과 타향 살이와... 이런 것들이 낙엽에 실려 있다.
<모 강(暮江)>
낙조 타는 강을
배 한 척
흘러 가고
먼 마을
저녁 연기
대숲에 어렸는데
푸른 산
떨어진 머리
백로 외로 서 있다.
*제목 '모강'은 "저녁 무렵의 강"이란 뜻이다. 이 호우는 이 시조에서 동양화 한 폭을 그려 놓고 잇다.
<개 화(開花)>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현대문학(1962.5)수록
<난(蘭)>
벌 나빈 알 리 없는
깊은 산 곳을 가려
안으로 다시리는
청자빛 맑은 향기
종이에 물이 스미듯
미소 같은 정(情)이여.
<묘비명(墓碑銘)>
여기 한 시인이
이제야 잠들었도다.
뼈에 저리도록
인생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 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
<균 열(龜裂)>
차라리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섰읍니다.
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바위는 침묵과 인내의 상징물이다. 이상이 성취되지 못할 바에는 그 인내와 침묵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주제는 현실적 역경에 대한 인내
*원제는 <바위 앞에서>였다." 차라리" 앞에는 "비애에서 헤어나지 못할 바에는"이란 말이 생략되었다.
<휴 화 산(休火山)>
일찌기 천 길 불길을
터뜨려도 보았도다.
끓는 가슴을 달래어
자듯이 이 날을 견딤은
언젠가 있을 그 날을 믿어
함부로ㅎ지 못함일레.
<살구꽃 핀 마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살구꽃 핀 마을을 배경하여 흐르는 인정미를 노래했다.
1연은 낮.
2연은 밤.
<오(午)>
쩌응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靜寂)
읽던 책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디선가 낮 닭소리.
*동양적 虛靜의 세계를 노래한 현대 시조. 그야말로 한낮은 至靜至寂이다.
*주제는 한적미.
<산길에서>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시 전체에서 생명감을 느낄 수가 있다.
소재가 된 것은 진달래-물- 노루-산길이다.
*주제는 산길의 고요함과 봄의 정취.
<초 윈(草原)>
상긋 풀 내음새
이슬에 젖은 초원.
종달새 노래 위로
흰구름 지나가고,
그 위엔 푸른 하늘이
높이 높이 열렸다.
*초원의 아름다움을 점층적으로 표현한 서경시.
자유시 형태의 현대 시조이다.
중장에서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상긋: 향긋한
<달 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한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문장2권 6호 (1940.7) 수록
이 시조의 선지인 가람은 다음고 같이 평했다. 범상한 제재를 가지고 이와 같은 좋은 작품을 지은 건 그의 천품과 조예가 어떠함을 능히 짐작하겠으며, 우리 시단의 한 장래를 그에게 許與 않을 수 없다.
<삼 팔 선>
두견이 운 자국가, 피로 타는 진달래들
약산 동대에도 이 봄 따라 피었으리
꽃가룬 나들련마는 蜀道보다 먼 한 금.
*이 호우 시조집(1955) 수록
주제는 38선이란 역사적 비극을 통해 본 민족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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