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머 니>
어머니,
마음 푸욱 놓으시고
어서 여기 앉아 계세요.
봄이면 살구꽃 곱게 피고,
가을이면 대추 다닥다닥 열리는 집 뜰,
네모났던 섬돌이 귀가 갈리어
두루뭉실하게 된, 진짜
우리 집이올시다.
어머니,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가령 땅위에다
끓는 피로 꽃무늬를 놓더라도,
여기를 떠나지 마시고
앉아 계세요.
여기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적부터,
돌도끼로 나무 찍던
그 옛날부터 살아 온,
하늘 맑고 물 맑은 동네.
여기는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 아들 아들들이
살아야 할, 잘 살아야 할, 진짜
아들의 땅이니까요.
어머니,
여기 앉으셔요.
*소재는 조국따을 떠나 유랑하는 민족의 현실
*주제는 조국애
사랑하는 조국 강토를 떠나지 말고 언제까지나 지키라는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은행나무 산조(散調)>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 본다.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도라지, 밀화부리,살구씨,
도토리, 소금쟁이, 송이버섯,
돌개바람, 귤,토끼똥,
무서리 내린 마가을 저녁
소북히 쌓인 은행 이파리들은
졸지에 일어난 돌개바람에 실리어
하나씩의 음부로 도옹동 떠
저녁 노을에 화음(和音)하면서......
나불나불 납신거리며 도동실 뜨는
하늘하늘 하느작이는 노랑나비 떼
허덕이는 기억을 시원히 털어 버리고
마가을 하늘로 팔을 벌리며 솟아오르는
아, 은행나무의 서글픈 산조!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에서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고독을 느끼고 있다.
수사법은 열사법(列寫法)
*마가을: 늦가을을 뜻하는 사투리
*노랑나비 떼: 은행나무잎이 바람에 날리는 이미지
<송 가(送歌)>
---냐거 향기로운 술과 석류즙으로 너를 마시게 하리로다.(아가)
되도록이며--
나무이기를, 나무 중에도 소나무이기를,
생각하는 나무, 춤추는 나무이기를,
춤추는 나무 봉우리에 앉아
모가지를 길게 뽑아 늘이우고 생각하는 학이기를,
속삭이는 잎새며, 가지며, 가지 끝에 피어나는
꽃이며, 꽃가루이기를
어디서 뽑아 올린 것일까
당신의 살갗이나 뺨이나 입시울에서 내뿜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향기로운 이 높은 향기는.
되도록이면--
바위이기를, 침묵에 잠긴 바위이기를,
웃는 바위, 헤엄치며 웃는 바위,
그 바위 등에 엎드려, 목을 뽑아 올리고,
묵상에 잠긴 그 거북이기를, 거북의 사색이기를,
그 바위와 거북의 등을 어루만지는
푸른 물결이기를, 또한 그 바위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붙어 새낄르 치며 산는 산호이기를
진주알을 배고 와 뒹구는 조개이기를.
어디서 그런 재주들을 배워 왔을까,
당신의 슬기로운 예지로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 오묘한 비밀, 그지없이 기특하기만 한 생김새.
다시없는 질서, 바늘끝만치도 빈틈없도 헛점이 없는
이들의 엄연한 질서
이줄기친 생활이여!
되도록이면--
과일이기를, 과일 중에도 창포도이기를,
청포도 송이의 겸허한 모습이기를, 그 포도알처럼
맑고 투명한 마음씨이기를, 표정이기를,
그 포도알 속에 살고 있는 저 주신(酒神)바커스의
어질고도 용감한 기품이기를.
어디서 이크나큰 생명은 맥박쳐 오는 것일까,
그 무엇도 침범키 어려운 이 장엄한 행진의 힘.
당신의 혈관 속이나 세포처럼 독균의 침입을 입지않은
순수한 내부 조직 아, 이 눈부신
살림이여, 사랑이여 !
*자유문학(1959.7) 수록
자연의 의미를 무르익은 인생의 은유로 소화하여 노래한 작자의 대표작.
이 시는 주관적이면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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