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저녁 눈...........박 용래

바보처럼1 2006. 12. 7. 21:23

<저녁 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 터만 다니며 붐비다

 

 

*작자의 말---

그리운 사람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것은 격정이다. 미운 사람을 못 견디게 미워하는 것도 일종의 격정이랄 수밖에 .나에게 격정이 있었을까. 글을 쓰고 싶어 못 견디는 것도 격정의 소산이라면 그런 백주의 격정을 죽도록 갖고 싶다.

*박 용래의 시세계는 향토적인 생활 정서를 현대시의 정서로 순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월 훈(月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읍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

   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 집, 외딴 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외딴 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우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질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죽이고 생각

   하지요.

 

참 오래 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 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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