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춘향이 마음 초(抄)............박 재삼

바보처럼1 2006. 12. 7. 23:02

<춘향이 마음 초(抄)>

 

녹음의 밤에

흐느낌으로 피던 살구꽃 등속이 또한 흐느끼며 져버린 것을 어쩌리오.

세상은 더욱 너른 채 소리내어 울고 있는 녹음을

 

언제면 소복(蘇復)본단 말이요.

피리 구멍 같은, 옥에 내린 달빛 서린 하늘까지 이 몸에 파고 들어

기쁜 명(命)줄로 앓아쌓는 저것을 어쩌리오.

이런 때, 천지는 입덧이 나 후덥지근하고,태장(笞杖) 끝에 피멍진 천첩(賤妾)춘향의 전신 만신 캄캄

   한 살 위에도 별 생기는아픔을.....

만일에도 이 한밤 당신이 서서 계신다며는

어느 별만 우러러 아픅게 반짝인다 하리오

 

 

자연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뻗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전 10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

'수정가' '바람 그림자' '메미 울음에' '자연' '화상보(華想譜)' '녹음의 밤에' '포도' '한낮의 소나무에' '무봉(無縫)천지' '대인사(待人詞).

춘향을 소재로 하여 이 나라 여인상의 한스러움과 그 질곡을 노래하고 있다.

 

 

<무 제(無題)>

 

대구 근교(近郊)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섭 리(攝理)>

 

그냥 인고(忍苦)하여 수목이 지킨 이 자리와

눈엽(嫩葉)이 봄을 깔던 하늘마리 알고 보면

무언지 밝은 둘레로 눈물겨워도 오는가

 

신록 속에 감추인 은혜로운 빛깔도

한량없는 그 숨결 아직은 모르는데

철없이 마음 설레어 미소지어도 보는가

 

어디메 물레바퀴가 멎은 여운처럼

걷잡을 수 없는 슬기 차라리 잔으로 넘쳐

동경은 원시로웁기 길이 임만 부르니라

 

*자연과 교감을 통한 은혜와 보이지 않는 감동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은혜와 미소, 감동과 여운이 기본 정서를 이룬다.

 

 

 

<울음이 타는 강>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 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생명과 시간의 소멸을 애수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표현에서 방언의 맛을 내어 여운을 살리고 있다.

 

 

<추억(追憶)>

 

진주(晉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움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晉州南江) 맑다 해도

오명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옹기전: 항아리,독 따위를 파는 곳.

연 구분 없이 15행으로 이루어진 산문체의 자유시다.

*1~5행 시적화자가 과거의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6~9해 당시의 시적 화자를 포함한 오누이의 심정을 표현.

 10~15행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의 모습,감정을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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