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역관의 어려움, 외국어 교육과 험난한 뱃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4) 역관의 어려움, 외국어 교육과 험난한 뱃길 외국어를 배우려면 해당 외국에 유학하여 배우거나, 국내에서 배우더라도 해당 외국인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는 학생을 외국에 보내지도 않았고,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지.. 역사 2007.10.29
석가탑 묵서지편서 새 이두 발견 석가탑 묵서지편서 새 이두 발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문서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에서 이두(吏讀)가 다량으로 확인됐다. 국어학계는 기존 학설의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만큼 문자발달사 연구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이두인 如加賜乙(여가사을)은 ‘다(하)+.. 역사 2007.10.29
(55)교토 명문 호족 진주공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55> 교토 명문호족 진주공 신라 비단 직조기술 日 전파한 양잠업의 시조 ◇일본 교토 서부에 위치한 오사케신사는 양잠과 비단 직조 기술을 일본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신라 진씨 가문의 하타노 사카기미(진주공)를 신주로 모시고 있다. --> 일본 교.. 역사 2007.10.25
(42) 일본의 기가 살아나다 1 [병자호란 다시 읽기] (42) 일본의 氣가 살아나다 Ⅰ 정묘호란의 발생은 조선과 일본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쓰시마(對馬島)와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는 동원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가동하여 전쟁의 추이와 승패를 파악하려 했다. 그들은 조선과 후금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전쟁이 자신들에게 .. 역사 2007.10.25
(54) 이즈모 바닷 신라神 모신 미호신사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54> 이즈모 바닷가 신라神 모신 미호신사 박혁거세 조상으로 섬겨… 둥근 알 신성시 ◇일본 이즈모에 대국주신과 함께 새 국가를 건설한 신라계 신 소언명신을 신주로 모신 미호신사의 본전. --> 경북 경주와 가까운 일본 땅은 ‘이즈모’(出雲)라고 불.. 역사 2007.10.21
(43) 조선 최고의 부자 변승업과 그 후손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3) 조선 최고의 부자 변승업과 그 후손 박학다식하기로 이름난 육당 최남선은 조선 최고의 갑부를 변승업이라고 했다. 변승업(卞承業·1623∼1709)은 일본어 역관인데,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 역사 2007.10.21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인조는 1627년 4월12일, 서울로 돌아와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1624년 이괄의 난을 맞아 서울을 버렸다가 되찾았던 경험을 3년 만에 되풀이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어렵사리 정권은 지킬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청북에서는 의병들이 계속 저항하.. 역사 2007.10.21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시대 과학자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평생 과학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병철·병길 같은 천문학자 집안 말고는, 중인 집안에서나 대대로 과학.. 역사 2007.10.15
(40) 정묘호란과 모문룡 [병자호란 다시 읽기] (40) 정묘호란과 모문룡 1627년 4월21일, 용골산성의 영웅 정봉수로부터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평안도 구성부터 곽산까지 후금 군사들이 가득 차 있고 용골산성은 고립되어 있다. 성안에는 7000명 가까운 군사가 있지만 양식이 다 떨어져 굶어 죽은 자가 이미 30명이 넘었다. 후금군.. 역사 2007.10.12
(53)오우미 땅의 명찰 사이교지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53>오우미 땅의 명찰 사이교지 쇼토쿠 태자 고구려 스승 혜자스님 기려 가람 건립 ◇고구려와 백제 등 서쪽 나라에서 건너온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는 터전이라는 의미의 ‘사이교지’ 본당 모습. --> 일본 교토부에 위치한 호수 ‘비와코’(642.4㎢) 옆.. 역사 2007.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