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허수경 신작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에서 |
2005.10.21 (금) 2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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